Page 115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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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下 113


            (俗)에 들어가든 한 법도 마음에 보이지 않았습니다.즉 그의 온
            몸은 날카로운 칼이나 오랫동안 닦아 온 거울과 같아서 기연(機

            緣)에 머무르는 것이 없었고,군더더기 말도 없었습니다.위엄
            있게 수만 대중 위에 군림하면서도 자신이 존귀한 줄도,영화로
            운 줄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이와 같은 것을 갖추고 있더라도

            혹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을 만날 경우는 뒤로 물러나야만 욕
            됨이 없습니다.이 경지를 어찌 미혹한 생각[情見]을 벗어나지

            못한 자가 흉내낼 수 있겠습니까?
               깨달아 증득[悟證]한 자취를 살펴볼 때,혹시라도 번뇌를 모
            두 씻어 버리지 못했다면 주관․객관의 견해[能所之見]가 걸핏하

            면 어지럽게 일어납니다.주관[能]이니 객관[所]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미혹한 생각[情見]입니다.깨달아 증득한 자취도 마음에

            간직해서는 안 되는데,하물며 순전히 믿어서 이해한[信解]미혹
            한 생각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지극한 도의 근본은 가까이
            하면 할수록 멀어집니다.또 자신도 아직 도에 회합하질 못했는

            데,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에 하나가 되게 하겠습니까?이런 데
            걸려 있는 나로서는 스스로를 앞세울 수 없으므로,감히 망령되
            게 큰 평상에 앉아 도를 널리 펴는 스승이라고 자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객승이 말하였다.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신다면,고금에 즐비하게 들어선 사찰
                           17)
            에는 주병(麈柄) 을 잡은 큰스님들이 지금껏 끊어지질 않았는


              17)주병 고승들이 설법할 때에 사용하는 불구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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