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P. 114

112


            을지 모르겠습니다.만일 면하지 못할 경우의 죄는 굳게 절개만
            을 지키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몇 배나 무거울 것입

            니다.나는 이 이치를 약간은 알았고,그 때문에 구태여 외람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가 말한 주지(住持)의 직책에 필요한 덕목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의 능력이 있어야만
            일을 그르치지 않을 것입니다.첫째,주지의 소임을 맡은 사람은

            도력(道力)이 있어야 하고,둘째는 연력(緣力)이 있어야 하고,셋
            째는 지력(智力)이 있어야 합니다.
               도력은 근본[體]이고,연력과 지력은 활용력[用]입니다.근본

            이 있기만 하면 설사 활용력이 없을지라도 그런 대로 괜찮다고
            하겠습니다.이런 경우는 교화하는 방편이 엉성하고,관리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뿐입니다.그러나 도의 근본이 이지러진
            상태라면 백천 가지의 신이(神異)한 방편이 있어서 도와주려 해
            도 점점 더 맞아떨어지질 않습니다.비록 연력과 지력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더구나 근본과 활용력이 모두 없는데도
            외람되게 주지의 소임을 맡는다고 합시다.인과의 법칙이 없다
            면 얘기할 것도 없지만,그렇지 않다면 주지 자격이 없으면서도

            속 편하게 그 소임을 맡겠습니까?나는 불조의 도를 깨달아 증
            득하지는 못했습니다.평소에 내가 했던 말과 글은 단지 믿어서

            아는[信解]것뿐입니다.옛 사람은 일단 종지를 얻은 후에는 다
            시는 자신의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2,30년 동안 부목
            이나 공양주로 있으면서 깨달은 자취를 물리치고,증오한 이치

            도 씻어 버리려 하였습니다.그런 뒤에는 진(眞)에 들어가든 속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