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4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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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이 그렇게 되는 것이 어찌 온갖 지식을 모두 통달하고 온갖
지혜를 두루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리요!이것은 다만 복이 많
아서 그렇게 될 뿐이다.복이란 형상이 없는데 도량이 무엇을
의지하겠는가?나는 일찍이 형상 없는 복으로써 의지할 것 없는
도량을 찾아보았더니 거기에는 실낱같이 작은 차이도 전혀 없었
다.그것은 나에게 신령스런 견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현상대로 관찰해 보았던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있다 하자.밖으로는 먹고살기에도 부족하
고,안으로는 질병에 걸렸으면서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면,이 사
람은 복이 제 몸뚱이 하나 보살피기에도 부족한 것이다.혹간은
배고픔과 추위도 면하지 못했는데,재앙이 함께 모여들어 닭이
나 개만큼도 편안하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의 복이란,한 집안
을 보살피기에도 부족하다.또 자기 한 개인에게 복이 있으면
제 한 몸이 편안하고,여러 사람에게 복이 있으면 온 집안이 편
안해지고,나아가 나라가 편안해지고 온 천하가 편안해지니 이
모두가 복에 근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 복이 두루하지 못한 점은 책망
하지 않고 남들이 나를 순종해 주지 않는다고만 원망한다.이것
은 마치 귀먹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탓
하는 것과 같다.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리요.지혜로운 사람만
이 세상과 더불어 떴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세상을 탄식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그러니 복 많고 적음은 인위적으로 더하
거나 덜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