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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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語西話 下 67
넓히고 깊이 연구하게 하였다.그런 뒤에는 장경각의 열쇠를 관
장하게 하여 갖가지 교리를 섭렵케 하였다.또한 유서(儒書)를
박식하게 연구하고,다른 학문도 통달할 만큼 공부하여,나란히
좌석을 잡아 설법하게 하였다.그런 뒤에 시기를 기다렸다가 적
당한 시기가 되면 스승이 되게 하였다.스승들은 의발(衣鉢)을
부촉하여 믿음을 표시했고,제자들은 향을 준비하여 법을 이어
받았다.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것이다.
5종(五宗)으로 파가 나누어진 다음부터는 서로 섞이지 않고
도를 전수하고 받을 때,세밀한 지도와 여러 견해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곧바로 지적한 도라면 과연 이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들이 문자를 수립하지 않고 그대로 가리키는 도리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이것은 시기가 성인이 태어났던 때와 벌써
한없이 멀어졌고 인심 역시 날로 퇴보하여 사람들이 도를 체득
하겠다는 바른 생각이 견고하지 못했고,또한 경계를 구분하는
알음알이만 날로 더해 가는 것을 보고는 마지못해 펴신 방편이
다.백장스님이 총림을 건립하지 않았을 때에는 스님들은 모두
때묻은 초의(草衣)를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도(道)
로 향하였다.백장스님 대에 이르자 그때의 스님들은 벌써 늙고
병드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그 때문에 총림을 건립하여 늙
고 병드는 것을 위안하고,조사의 도를 보완하게 하였다.가령
이때에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바로 지적한다’는 그 말마저도
없어져 지금 들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근래에 공리공론만 일삼
는 무리들은 사람들이 바로 지적하지 않고 우회한다고 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