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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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는 말은 희로애락의 범위를 초월하였고,알음알이
의 범위를 벗어났다.그러니 어떻게 경전의 문자와 나아가 성인
이니 범부이니 하는 단계 따위로 깨달을 수 있겠는가?참으로
애석하다.참선하는 납자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되는 대로 이
소리 저 소리 하고 자기 멋대로 천착하여 말하기를,“이 말은
놓아주는 것이다”,“이는 꽉 잡아두는 것이다”,“이는 곁에서 두
들겼다”,“이는 가만히 쳤다”,“이는 상대를 더듬어 보았다”,“이
는 긍정하고 허락했다”,“이는 향상 혹은 향하[向上向下]이다”,
“이는 전제 혹은 반제[全提半提]다”,“이는 빈가 혹은 주가[賓家
主家]다”,“이는 사구 혹은 활구[死句活句]다”,“이는 이리저리
따져 기량을 겨뤄 본다거나 진솔하게 직설적으로 펼친다[商量平
展]”고 말하기도 한다.또는 “이 말은 최초 혹은 최후이다”,“이
는 칼끝을 숨기고 관문을 꿰뚫었다”,“이는 살인하는 칼,혹은
사람을 살리는 칼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심한 사람들은 경교(經敎)에서 억지로 이끌어다
말하기를,“이것은 색(色)에 나아가 마음을 밝히고 사물에 의탁
하여 이치를 나타냈다.또 이는 말을 하여 말 없음[無言]을 나타
냈고,말 없음으로 말 있음[有言]을 나타냈다.이것의 눈은 동남
쪽을 관찰하지만 뜻은 서북쪽에 있다.이는 위음왕불(威音王佛)
저편 공겁(空劫)이전으로서 티끌만큼 차이도 없이 완전히 자기
에게로 되돌아간다”라고들 한다.이와 같은 이단(異端)의 잘못된
말들은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다.알음알이에 한번 빠졌다 하
면 모두가 의미 있는 말[有義語]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
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