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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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語西話 續集 上 99


            듯 호호탕탕하게 전후로 나타나 서로 응하니,일일이 그것을 다
            기록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빠르기는 나는 화살촉을 물어뜯는

            것보다 신속하고,예리함으로 말하자면 취모검(吹毛劍)도 무디며,
            독하기는 먹으면 죽는 짐주(鴆酒)술과도 견줄 수 없습니다.그 훌
            륭한 맛은 고깃국과도 비교할 수가 없어 화려한 비단 위에 꽃을

            수놓은 격이며,최고로 맛난 음료인 우유와도 같습니다.근엄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임하였고 큰 평상에 걸터앉았으니,바람이

            불면 귀신 소리가 우주에 퍼집니다.기침하고,침 뱉고,팔을 휘
            젓고,노하여 꾸짖고,희롱하여 웃는 일 등을 가리켜 모두 선기
            (禪機)라 한 것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유가(儒家)경전에서 말한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하여
            드디어 만물에 통한다[寂然不動 感而遂通]’는 말은 불가의 선기

            와 비슷한 듯도 합니다.여기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중지
            시킬 그 무엇이 있어서 움직이지 않게 한 것이 아닙니다.자체
            가 본래 밝고 고요하여 태허공(太虛空)같은 것으로서,이는 천

            리(天理)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그리고 ‘감응하
            여 만사에 통한다’는 것은 한 털끝만큼이라도 의식적으로 바라
            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감응하여 마음에 통할 때,마치

            큰 종을 두들기면 빈 골짜기에 소리가 울리듯이 인위적인 작위
            도 조작도 없이,이치가 본래 그런 것입니다.이것은 마치 맑은

            거울에 온갖 물체가 비치고,밝은 구슬에 5색이 나타나는 것과
            도 같습니다.선(禪)은 이러한 거울이나 구슬이며,기(機)는 비춤
            이거나 나타남입니다.온갖 물체의 곱고 추함과 5색의 옅고 진

            함이 너무도 분명하여 자신을 감추지 못한다고는 하나,거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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