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선림고경총서 - 04 - 치문숭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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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고상한 행[高尙之行] 115
람으로,개원사(開元寺)에 머무르면서 경론을 20여 년이나 강론
하였다.그 동안에 고을의 목사(牧使)와 사신들이 저마다 명함을
디밀며 뵙고자 하였으나,스님은 대부분 동자에게 명함을 거두라
하며 직접 만난 사람이 퍽 드물었다.이때에 군수 이공(李公)이
조정에 아뢰고 자의(紫衣)를 하사하려 하자,이를 시(詩)로써 사
양하였는데,
맹세코 경론을 전수하다 죽을지언정
명리에 오염되어 살지는 않겠노라.
라는 구절이 있었다.이공이 다시 다른 사람을 시켜 권면하였으
나,스님은 확고한 그 뜻을 결코 바꾸지 않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다시 오면 나는 저 노룡(盧龍)땅 변방 밖에 있으리
라.”
상국영왕(相國瀛王)인 풍공(馮公)도 그의 명성을 듣고 편지를
보내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자 항초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빈도가 일찍 부모를 버리고 뜻을 극복하며 수행한 이유는 본
디 미륵보살께서 이름을 알아주시옵기를 기약한 것이지,헛되어
조정의 재상들에게 전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어찌
헛된 명예와 들뜬 이익에 마음을 머무르도록 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풍공은 그를 더욱 존중하여 조정에 표문(表文)
을 올리고 억지로 자의(紫衣)를 하사하였다.스님이 돌아가시던
날에는 천악(天樂)이 허공에 가득하였는데,이는 그가 도솔천에
환생한 분명한 증거이리라.
찬탄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