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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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겠는가.”
               스님의 자상함이 이 정도였다.

               스님께서 과거에 운거사 주지를 맡아 달라는 명을 거절하자,
            불안(佛眼)스님이 편지를 보내 이렇게 권하였다.

               “운거사는 양자강 왼쪽 지방에서 으뜸입니다.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도를 실천할 만하므로 굳이 사양해선 안 되리라 봅니다.”
               스님이 답하였다.

               “총림이 생겨나고부터 이러한 명목(名目)에 가리어 절개와 의
            리를 무너뜨린 납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불감(佛鑑)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고암의 처신은 납자들이 따라갈 수 없겠군.”                      기문(記聞)


                 14.

               고암스님이 늙고 병든 스님을 위안하자고 권하는 글을 하나
            지었다.
               “변변찮은 내가 일찍이 대장경을 찾아보고 부처님의 의도를 자

            세히 살펴보았더니,비구가 가만히 앉아서 공밥을 받고 게으른 마
            음을 내며 ‘나는 존경받아 마땅한 비구입네’하는 아견(我見)일으
            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그래서 새벽마다 부처님은 제자와

            함께 발우를 지니고 걸식하셨다.귀천을 가리지 않고 높다 낮다
            하는 마음이 없어 신자들에게 모두 고르게 복을 받게 하셨다.

               그 뒤 마련된 상주물(常住物)이라는 것은 본래 늙고 병들어 걸
            식을 나가지 못하는 비구를 위해 만든 것으로서 젊고 건강한 납
            자들은 먹을 수 없었다.부처님이 입멸(入滅)하신 후 정법(正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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