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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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운 여본스님 127
사대부 가운데서 불교를 진실하게 믿던 이는 나이도 잊고 세
도도 굽히면서 용맹정진하여 완전하게 반드시 깨닫기를 기약하고
야 말았다.시랑(侍郞)양대년(楊大年)과 도위(都尉)이화문(李和文)
등이 광혜원 원연(廣慧院 元璉)․석문 온총(石門 蘊聰)과 자명(慈
明)등 모든 큰스님들을 뵈었을 때,뜨겁게 오갔던 문답들이 여기
저기 모든 선서(禪書)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양무위(楊無爲)와 백운 수단(白雲守端)스님의 관계,장무진(張無
盡)과 도솔 종열(兜率從悅)스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모두가 관문
을 통과하고 정곡을 쳐서 철저하게 끝까지 깨달았는데,구차하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근세에 시랑(侍郞)장무구(張無垢)와 참정(參政)이한로(李漢老)
․학사(學士)여거인(呂居仁)은 모두가 묘희(妙喜)노스님을 뵙고
점점 진보하여 결국 선의 심오한 경지를 체득했으니,이들은 속세
를 초탈한 도반이라 할 만하다.그들은 좋고 싫은 감정과 맞고 거
슬리는 경계를 번개처럼 뿌리치고 우레처럼 쓸어 버려 세속의 구
차함과 거리낌을 벗어 버렸다.그리하여 보는 사람들은 옷깃을 여
미고 황송한 마음으로 길을 비켜서며 그 경지를 엿볼 수가 없었
다.그러나 이들 사군자(士君子)들은 한가하고 적막한 강가에서 서
로를 구하고 선(禪)의 고요한 경지에 마음을 깃들이고자 하면서
본심만을 발휘할 뿐이었다.
후세엔 선덕(先德)들의 법다운 모범은 보지 못하고,오로지 아
첨을 일삼으며 승진하여 이름 날릴 것만을 비뚤어지게 구하고 있
다.주지가 추천한 이름으로 장로가 된 자들은 더러는 명함을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