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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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선오스님 125
우 꿋꿋이 지켰다.장무진(張無盡:1043~1121)거사가 강서(江西)
지방에 부임하여 여러 번 스님을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그러다가
얼마 지나자 돌연히 뜻을 바꿔 이렇게 말하였다.
‘선림은 갈수록 시들어 가는데 법을 널리 펴야 할 자들은 대부
분 부처를 팔아 자신의 안일만 추구하고 있으니,급히 떠받쳐 주
지 않는다면 당장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리하여 회상(淮上)의 태평사(太平寺)에서 법을 열었다.”
나는 그때 동쪽으로 가다가 스님의 문하에 오르게 되었는데,
총림은 정돈되고 종풍(宗風)은 크게 떨쳐 백장(百丈)스님이 건재할
때 못지 않을 정도였다.그 뒤 15년이 지나 이 방(榜)을 봉원(逢原)
에서 보게 되었는데,읽어 내려가면서 마치 그의 모습[道骨]을 보
는 듯 오싹하였다.
이 글은 황산곡(黃山谷)스님이 전서체(篆書體)로 일필휘지하였
는데,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격문(激文)이 있다.
“아-아,천하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편다 하는 자들이 모
두가 영원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지를 한다면 조사의 도가 널리
펴지지 못할까 무얼 근심하겠는가. 논어(論語)에서도 ‘사람이 도
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크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는
데,영원스님이야말로 이렇게 한 분이다.” 석문집(石門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