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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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희 종고스님 175



               그렇다면 상법․말법시대엔 실로 그 적임자를 만나기 어렵다
            하겠습니다.가령 그 행동이 보다 우수하고 인격과 재주가 대체로

            갖추어져 염치(廉恥)와 절의(節義)를 아는 자를 그 자리에 앉게 한
            다면 약간은 나아질 것입니다.”                             가암집(可庵集)



                 14.
               묘희스님이 자소에게 말하였다.
               “근대의 주지로는 진여 모철(眞如慕喆)스님 만한 이가 없고,총

            림을 보필하는 자로는 양기(楊岐)스님 만한 이가 없다.또한 알 만
            한 사람들은 자명(慈明)스님의 진솔(眞率)함에 대해 ‘하는 일은 소

            홀하였으나 전혀 꺼리고 숨기는 일이 없었다’고 평한다.
               양기스님은 자기 몸을 잊고 스승을 섬기면서 빠진 일은 없을
            까,혹은 완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였다.심한 추위나 더위에도 자

            기의 급한 일로 게으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남원(南源)에서
            시작하여 흥화(興化)에서 마치기까지 근 30년 동안 자명스님의 세
            대가 다할 때까지 기강을 총괄하였다.*
                                               50)
               진여스님의 경우는 처음 보따리를 싸들고 행각하면서부터 세
            상에 나가 대중을 거느릴 때까지 주리고 목마른 사람보다도 더
            법을 위해 자신을 잊고 지냈다.아무리 급한 경우라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고,말을 정신없이 하는 법이 없었다.또한 여름에도



            *양기(楊岐)스님은 출가한 후 여러 곳으로 선지식을 찾아다니다가 석상 초원
              (石霜楚圓)스님을 남원산(南源山)에서 참례한 후로 초원스님이 도오산(道吾山),
              석상산(石霜山)그리고 담주(潭州)광화선원(光化禪院)으로 옮기자 따라다니며
              약 30년 간 사중의 일[院事]을 총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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