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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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명교스님은 정종기(正宗記)를 올리는 표(表)에서
첫 부분과 맨 끝만 ‘신 아무개[臣某]’라 하여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
례를 따랐을 뿐,중간 부분에서 자기 의견을 서술할 때에는 그대로
이름을 썼다.그리하여 당시의 벼슬아치들은 이 글을 읽어보고 스님
의 높은 식견을 존중하였다.
나는 지난날 상중(湘中)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스님이 도량
을 짓고 남악의 황제를 초대하여 설법할 때 몸을 굽혀 ‘신승 아무개
[臣僧某]’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보았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
80.지나친 겸손에서 오는 폐단을 경계함
내 요사이 동오(東吳)와 경회(京淮)지방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법회는 매우 융성하나 법을 주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겸손하여 옛
스님들의 격식을 무너뜨려 버렸다.예를 들면 옛 스님들은 법당에
올라 옷을 여미고 좌정하면 시자가 법회를 열어도 좋겠느냐고 물어
보고 물러간 뒤에 대중이 공경을 다하고 양곁에 서서 엄숙하게 경
청하며 법을 높였기 때문에 법을 주재하는 사람에게 어려움이 없었
다.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못하고 노스님이 법좌에 올라 손을 앞으
로 다소곳이 모으고 서서 모든 승려가 제자리에 선 다음에야 자리
에 앉는다.오직 강서 지방의 총림만은 옛 격식을 바꾸지 않고 있지
만 오늘날의 형편으로 살펴보면 머지 않은 후일에 아마 동오와 경
회 지방보다도 더욱 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