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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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고,25세에 항주(杭州)죽림사(竹林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
다.그리고는 처음 경산 국일(徑山國一)스님을 찾아 5년 동안 시봉
하다가 대력(大歷)연간(766~779)에 종릉(鍾陵)에 가서 마조(馬祖)
스님을 찾아뵙고,3년 후 석두 희천의 문하에 이르렀다.원화(元和)
정해(807)4월에 입적하니,향년 60세,법랍은 35세이다.”
그러나 달관(達觀:989~1060,임제종,曇穎스님의 호)스님의
오가종파집(五家宗派集)에서는,‘도오는 마조스님의 법을 계승하
였다’고 하면서 당(唐)구현소(丘玄素)가 지은 비문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였다.
“스님의 호는 도오이며,자궁(渚宮)사람으로 속성은 최씨(崔氏)
이니,바로 최자옥(崔子玉)의 후손이다.15세에 장사사(長沙寺)담저
(曇翥)율사에게 출가하여 23세에 숭산(崇山)의 율덕(律德)스님을 찾
아 계를 받았으며,석두 희천스님을 참방,2년 동안 수업 정진하였
으나 깨달은 바 없어 장안으로 들어가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국사를 시봉하였다.그러다가 34세에 시자 응진(應眞)스님과 함
께 강남 지방으로 돌아와 마조스님을 뵙고 한마디 말에 크게 깨치
자 마조스님은 축하하며 ‘뒤에 지난날 살던 곳을 떠나지 말라’고 당
부하였다.이 말씀대로 다시 자궁으로 돌아왔으며,원화(元和)13년
(818)무술 4월 초에 병세가 악화되어 13일에 입적하니,향년 82세,
법랍은 63세이다.”
이 두 전기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두 사람으로 보인다.그러나
구현소의 비문에는,‘스님의 전법제자 숭신(崇信)은 예주(澧州)용담
사(龍潭寺)의 주지이다’하였고,남악 회양(南嶽懷讓:677~744)스
님의 비문은 당(唐)대의 저명인사 귀등(歸登)이 지은 것인데,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