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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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亂隨情轉 臨終被業牽
惺悟不由情 臨終能轉業
우연히 당사(唐史)를 펼쳐 보았더니,이훈(李訓:선종 때의 재
상)이 패하였을 때(859)간신의 무고로 벼슬에서 쫓겨나 종남산으로
도주하여 종밀(宗密)스님에게 의지한 적이 있었다.스님은 그를 숨
겨 주려고 하였지만 문도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는 결국 봉상사(鳳翔
寺)로 도망하였다가 주질현(盩窒縣)의 관리에게 체포되어 사형에 처
하여졌다.이 일로 구사량(仇士良)이 종밀스님을 체포하여 죄를 물
었으나 스님은 태연히 말하였다.
“이훈과는 오랫동안 사귀어 왔으며,우리 불법은 곤경에 빠진 자
를 구해 주는데,거기에는 원래 사랑과 미움이 없는 것이다.그리고
죽음이란 본디 내 운명일 뿐이다.”
생각건대 사대부와 교류한 당(唐)대의 비구들을 간혹 전기에서
볼 수 있으나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불교에 욕을
끼치기도 하였다.그런데 종밀스님만은 이렇듯 초연하였고,역사를
쓰는 사람도 기꺼이 붓을 들어 이 사실을 기록하였으니,그것은 도
를 실천함이 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그의 게송을 살펴보면 모두가
망정의 경계[情境]를 철저히 벗어나고자 함이었으니 마치 큰 코끼리
가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자재하게 떠나가는 것과 같은 예이다.어
찌 파리떼들이 침을 뱉었다고 더럽혀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