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선림고경총서 - 08 - 임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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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장난 삼아,“그렇다면 눈을 들어 깃발이 나부끼는
상황을 본 게 아닌가?”라고 하였더니,그는 나의 말을 수긍하였다.
이에 “조사께서는 밤에 두 스님이 서로 따지는 말을 듣고 곧 그
들에게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
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그때 설령 그 스님들이 눈을 부릅뜨고 어
둠 속을 꿰뚫어보았다 하더라도 바람이 부는지 깃발이 나부끼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니,그는 몹시 성을 내며 떠나가
버렸다.
무진(無盡)거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얼마 전 서울에서 혜림사(慧林寺)의 한 스님을 만나 참선하
는 이야기를 하였는데,그 스님이 여러 선림(禪林)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에,내 그 스님에게 물었지!‘현자(蜆子)스님*이 조사가 서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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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오신 뜻[祖師西來意]에 대하여 신주 앞에 놓인 술잔[神前酒臺
盤]이라 대답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요?’그 스님이 눈을 휘둥그
렇게 뜨고 똑바로 나를 바라보며 ‘신주 앞의 술잔…’하고 중얼거리
기에 나는 다시 그 스님을 놀려 주었지.‘오늘 저녁 사당에 등불이
밝혀 있으면 그만이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현자스님의 불법은 헛되
게 될 것이다’라고.”
*현자(蜆子):동산 양개(洞山良价)스님에게 심인(心印)을 받은 뒤 기행을 하며
속세에 어울려 살았다.날마다 강변에서 조개와 굴을 따다 배를 채웠으므로
사람들이 현자(조개)스님이라 불렀다.밤이 되면 동산에 있는 사당에 가서 지
전(祉錢:죽은 자를 위해 관 속에 넣는 가짜 종이돈)속에 묻혀 지냈다.하루
는 화엄사 휴정스님이 시험해 보려고 지전 속에 숨었다가 현자스님이 들어오
자 꼭 붙들고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물으니 ‘신주 앞에 놓인 술잔’이라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