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선림고경총서 - 08 - 임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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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간록 하 47
안능엄(安楞嚴)스님이 수능엄경 의 구두점을 버린 데에도 밝은
점[明處]이 있다 하겠으나 나는 납자들이 그의 뜻에 부화뇌동(附和
雷同)하게 될까 두렵다.
선문의 오묘한 종지에 대하여 오늘날 총림에서는 전혀 입을 벌
리지 못하는데 큰스님들은 날로 떠나가시고,후학 소생들만이 날마
다 시끌벅적 떠들어댈 뿐 다시는 분명히 아는 사람이 없기에,여기
에 예전 큰스님들께서 가르쳐 주신 큰 법의 종지를 기록하여 뜻 있
는 후학을 기다리고자 한다.
이 세상의 가르침의 체제는 소리[音聞]로 근기에 응하게 되어 있
다.그러므로 밝은 선지식은 말을 빌려 그 제자의 지혜[智用]를 틔
워 주는 법이다.이렇듯 말로 말을 부정하고[因言遣言]이치로 이치
를 가려내나 오묘하고 밝은 마음은[妙精圓明]한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다.이를 ‘유주진여(流主眞如)’라 하며,이는 분양스님이 말한
‘일구에 명명백백 삼라만상을 포함한다[一句明明該萬象]’라는 뜻이
다.
이 이치를 깨달은 자는 신통하게 밝혀지지만,그렇지 못하면 말
끝[語下]에서 죽게 된다.그러므로 근기에 맞게 쓸 때면 모두 굴[窠
臼]속에서 벗어나 그림자와 발자취에 얽매이지 않는다.이것이 ‘말
이 있는 가운데 말이 없는 것’으로서 분양스님이 말한 ‘구월 구일
중양절에 국화가 새롭구나’라는 것이다.
‘삼현(三玄)’을 마련한 뜻은 본래 병을 없애려는 데 있으므로 법
을 깨치려는 자는 그 뜻을 아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뜻을 알면
쓸쓸하고 막힘이 없는 텅 빈 곳에서 인연 따라 자유자재 운용하리
니 이를 ‘때를 잃지 않음이라’하며,분양스님이 말한 ‘뜻 알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