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P. 148

148 오가정종찬 상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벌써 시방을 뛰어넘는 포부가 있었으니
                 선비의 두건 싫다 하여 공맹의 책을 팽개치고
                 조실에 들어가 서래의(西來意)를 물었어라.

                 인연 따라 얽매임 없이
                 천길 파도 희롱하며 탄주어(呑舟魚)*를 용납하고
                                                 10)
                 큰 지혜 밝고 밝아
                 구곡주(九曲珠)*에 실을 꿸 때 개미 힘을 빌렸도다.
                              11)
                 군졸의 대오에 몸을 숨겨
                 북녘의 거친 풀숲에서 분양을 친견하고
                 오대산 노파를 감파하여
                 남녘 쇠화로 속에 황룡을 삶았어라.

                 골동품 수레에 든 우리 불교를 짊어지니
                 한 가닥 실오라기에 삼 만 근을 달아 놓고
                 장군의 말 타고 성에서 싸움을 펼치니
                 한 몸에 만기(萬騎)를 대적하도다.

                 깊은 산골 거친 풀밭에
                 양기스님과 동승했으나 길은 달랐고
                 들불에 옛 무덤 타니
                 곡천스님 나자빠졌다가 스스로 일어나는 소리 들리네.

                 높은 산봉우리에 매가 싸우니
                 구름 속에 살기가 돌고
                 차가운 서릿발 속에 호랑이 웅크리니



            *탄주어: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
            *구곡주:이리저리 구멍을 뚫어 놓은 작은 구슬.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