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2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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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오가정종찬 상
이에 무진거사는 크게 웃었다.
스님이 경산사(徑山寺)에 있을 때 송을 지었다.
신비궁(神臂弓)을 한 번 쏘니
천 겹 갑옷을 꿰뚫는구나
납승의 문하를 보아라
어느 냄새나는 가죽 버선에 맞았는가를.
神臂弓一發 透過千重甲
衲僧門下看 當甚臭皮襪
때마침 조정에서 신비궁을 만들고 있던 터라 재상 진회(秦檜:
1090~1155)는 스님과 장구성(張九成)이 모의하여 대군을 일으키
고 조정을 비난한다고 생각하였다.그리하여 스님은 형주(衡州)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매주(梅州)로 옮겨다니며 모두 17년이 지난 뒤
에야 사면되어 다시 경산사의 주지가 되었다.매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복주(福州)에 도착하니 장참정(張參政:張埈)이 양서암(洋嶼
庵)으로 맞이하였는데 한 해 여름에 13명이나 깨우쳐 주었으며 그
가운데 귀산 미광(龜山彌光)스님이 가장 뛰어났다.
조거제(趙巨濟)가 찾아왔을 때 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 만일 다른 사람이 너에게 선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이 공안은 어떻게 참구해야 하고 저 공안은 어떻게 깨쳐
야 한다’하거든 뜨거운 똥물을 퍼부어 주어라.이 말을 꼭 기억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