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7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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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임제종 217
“눈앞에 법이 없으면 만상이 널려 있고 생각[意]이 눈앞에 있
으면 들쭉날쭉하여 가려내기 어렵다.그러므로 눈앞의 법이 아니
라야 부딪치는 곳마다 그를 만나며,귀와 눈으로 이를 수 있는 경
계가 아니라야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떠나지 않는다.그렇긴 하나
최고의 관문 빗장을 밟아야 비로소 되었다 하리라.그렇기에 말하
기를 ‘그물과 새장으로도 그를 붙잡아 놓을 수 없고 소리쳐 불러
도 돌아보지 않으니 부처와 조사는 자리를 정하지 않아서 지금까
지 처소가 없다’고 하였다.이와 같으면 생각[念]을 거둬들이는 고
생을 하지 않고서도 누각의 문이 저절로 열리고 한 발자국도 떼
지 않아도 모든 성에 이를 수 있다.”
주장자를 휙 뽑아 들고 금을 그으면서 말을 이었다.
“길에서 죽은 뱀을 보거든 때려죽이지 말고 밑 없는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오너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의 참 근원입니까?”
“ 진흙을 물에 뒤섞는 것이다.”
“ 그렇게 될 때는 어떻습니까?”
“ 짚신 뒤축이 끊어지겠다.”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동경하되 마치 목마른 말이 물로 달려가듯 하고,기연에
응하기를 성난 사자가 돌을 긁어대듯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