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8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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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오가정종찬 상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파리는 항아리 속에서 스스로의 즐거움을 누린다.예전에
            비장방(費長房)은 한 선생이 방 위에 호로병을 매달아 놓은 것을
            보고서 그를 찾아가 함께 그 속에 들어가 보니 참으로 신선 경계
            였다고 한다.”



               찬하노라.



                 가슴속에 품은 마음 가을처럼 싸늘하고
                 웃음띤 말씀은 봄볕처럼 따사롭다.
                 수극(垂棘:지명)구슬을 궤짝에 넣어 두고 좋은 값을 기다리니

                 소반 위를 구르는 구슬은 그림자 생겨도 흔적이 없어라.
                 은밀히 전한 소실봉의 심법을 사모하여
                 목마른 말이 바위 아래 우물로 달려가듯 하였고

                 설명할 수 없는 벽암록의 말씀을 음미하되
                 초파리가 옹기 속에서 홀로 하늘을 즐기듯 하였네.
                 길이 멀어 짚신 뒤축이 끊어질 때
                 대도의 근원을 찾았고
                 대나무 빽빽해도 물 흐르는 데는 지장 없다고 하여
                 거친 주먹 세운 것을 보았네.

                 큰 지팡이 뽑아 들고
                 한 획으로 갈등을 끊었다는 말에 돌이 고개를 끄덕여 웃었고
                 일대장경(一大藏經)을 연설해 내니
                 잠든 호랑이 새끼줄에 묶였네.

                 깊은 연못 찬 칼날은 싸늘한 서리를 머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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