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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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오가정종찬 상


               “앞으로 다시는 천하 노스님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습니

            다.”
               그 이튿날 용담스님은 법좌에 올라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이 중에 이빨이 칼숲과 같고 입은 새빨간 핏덩이 같은 사람이
            있는데 한 방 쳐도 끄떡도 않는다.뒷날 그는 우뚝한 산봉우리 위

            에서 우리 도를 세워 나갈 사람이다.”
               스님은 마침내 법당 앞에 청룡소초 를 수북히 쌓아 놓고 불

            을 붙이면서 말하셨다.
               “현묘한 논변을 다 통달하여도 그것은 허공 속에 있는 터럭과
            같고 세상의 모든 추기(樞機)를 다하여도 그것은 큰 골짜기에 떨

            어지는 물 한 방울과도 같다.”
               그리고는 모두 불태워 버렸다.



               하직인사를 하고 위산 영우(潙山靈祐)스님을 찾아가 복자(複
            子:겉옷.행각할 때 침구 대용으로 쓰는 두터운 옷)를 옆구리에
            끼고 법당으로 올라가 동쪽에서 서쪽으로,다시 서쪽에서 동쪽으

            로 오가면서 방장실을 보면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누구 없느냐!”

               위산스님은 앉은 채 돌아보지도 않았다.스님은 “없구나!아무
            도 없어!”하면서 나오다가 산문 앞에 와서 “그렇지만 그렇게 급
            할 건 없지”하고는 몸가짐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만났다.

               문턱을 넘어서면서 좌구(坐具)를 집어들고 “스님!”하고 소리치
            자,위산스님이 불자를 잡으려는데 스님이 그대로 악[喝]!하고는

            소매를 털고 나와 버렸다.저물녘이 되어 위산스님이 수좌에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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