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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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오가정종찬 상


            않기만 한다면 자연히 텅 비고 신령하며 비[空]었으면서도 오묘할

            것이다.털끝만큼이라도 언어의 본말에 대해 말하는 것을 허용하
            는 자는 모두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니,왜냐하면 털끝만큼이라도
            생각에 매이면 3도(三途)의 업인(業因)이 되며 잠깐이라도 정념이
            생기면 만겁의 쇠사슬이 되기 때문이다.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이

            름은 모두가 허튼 소리며,빼어난 모습이나 못난 얼굴은 모두가
            부질없는 모습이다.그러니 그것을 구하려 한다면 과연 누(累)가

            없을 수 있겠는가?마침내 그것이 싫어질 때에도 큰 근심거리가
            되어 끝내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설봉스님이 스님께 물었다.
               “예로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의 일에 저에게도 자격이 있습니

            까?”
               “ 뭐라고?!”
               설봉스님이 이 말에 느낀 바가 있었다.



               곽(廓)시자가 물었다.
               “옛 성인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 뭐?뭐라고?”
               “ 하늘을 나는 용마라고 등용하려 했더니 절름발이 자라가 머리
            를 쑤욱 내밀었군!”

               스님은 그만두었다.그 이튿날 목욕을 하고 나오니 곽시자는
            끓는 물을 스님에게 주었다.스님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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