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선림고경총서 - 10 - 오가정종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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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운문종 137

               치평 연간(治平:1064~1067)에 스님은 상소를 올려 산사로

            돌아가게 해줄 것을 바라는 송을 지어 올렸다.


                 구름 덮인 천산만학에 개울 물소리
                 이 봉우리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픈 마음
                 남은 생애 황제의 만수무강을 빌며
                 한 줄기 맑은 향 올리노니 돌다락에 향기 가득하소서.
                 千蔟雲山萬壑流 歸心終老此峰頭
                 餘生願祝無彊壽 一炷淸香滿石樓



               송나라 영종(英宗)은 더 만류할 수 없다 생각하고 조칙을 내려
            스님의 마음에 편할 대로 하도록 윤허하였다.

               이에 스님은 양자강을 건너 금산 땅에 머무르니 서호 사명(西
            湖四明)태수가 육왕사(育王寺)의 주지로 맞이하고 구봉 감소(九峰
            鑑韶)스님이 권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스님이 육왕사에 주석하

            자 사명 땅 사람들은 서로 힘을 내어 누각을 세우고 그곳에 황제
            가 하사한 시를 보관하여 ‘신규각(宸奎閣)’이라 하였다.



               소동파가 항주(杭州)자사로 있을 때 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물
            었다.

               “신규각 비문을 청하는 부탁을 받고 삼가 글을 지었습니다만
            몸이 쇠약해지고 학문을 전폐한 터라 과연 이 글을 비석에 새길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제가 참요(參廖:?~1106)스님의 이야

            기를 들어보니 스님께서 서울을 나올 때 영종 임금께서 ‘아무 곳
            이나 마음에 드는 곳에 주지를 하도록 하라’고 손수 조서(詔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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