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선림고경총서 - 10 - 오가정종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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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오가정종찬 하

               한 스님이 물었다.

               “여름 안거의 노고를 칭찬하는 일은 그만두고,앞으로의 일은
            어떻습니까?”

               “ 삭발하고 바리때나 씻어라.”
               “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 그래 가지고는 물 한 방울도 소화해 내기 어렵겠구나.”



               찬하노라.


                 모든 인연 다 끊고서
                 자신의 본성만을 밝히니.

                 우러러보아도 하늘 볼 수 없고
                 머리를 숙여도 땅이 보이질 않는다.

                 성인 경지에 거뜬히 들어가
                 운문호떡의 기연을 꿰뚫었고
                 많은 경전을 읽고 연구하여
                 동중서같이 학문에 뜻을 품었네.

                 아지랑이 노을은 등뒤에서 피어난다 하니
                 무봉탑에서 이름과 모양을 힘써 찾았고
                 흑백이 나뉘기 전에
                 한판 바둑을 그럴싸하게 가르쳐 주었네.

                 백척간두에서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니
                 깎아지른 벼랑처럼 험준하고
                 여름 안거에 선당(禪堂)에서 삭발하니
                 물 한 방울 녹여 내기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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