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8 - 선림고경총서 - 10 - 오가정종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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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오가정종찬 하

               “옛 스님이 말하기를 ‘하늘을 오르는 데 사다리를 쓰지 않고

            온 누리를 다녀도 다니는 길이 없다’고 하셨는데 무엇이 하늘로
            오르는 데 사다리를 쓰지 않는 것입니까?”

               “ 터럭끝 만한 틈도 빠뜨리지 않는다.”
               “ 무엇이 온 누리를 다녀도 다니는 길이 없는 것입니까?”
               “ 조금 전에 내가 너에게 무어라고 말하였더냐?”
               “ 법안스님의 보인(寶印)을 스님께서 친히 받으셨는데 오늘 이

            회중에서 누구에게 전하시겠습니까?”
               “ 두둥둥 북을 칠 때 한쪽을 치면 양쪽에서 소리가 울린다.”

               “ 옛말에 ‘허공을 두드려 딱딱 소리가 나니 돌사람과 나무사람
            이 함께 대답을 하며,유월에 어지럽게 눈이 내리니 여래의 대원
            각(大圓覺)이라’하였는데 무엇이 허공을 두드리는 경지입니까?”

               “ 곤륜(崑崙:곤륜산에 사는 까만 인종)이 무쇠 바지를 입었는
            데 몽둥이로 칠 때마다 한 발자국씩 걷는다.”

               “ 그렇게 하면 돌사람과 나무사람이 함께 대답을 합니까?”
               “ 네가 그들이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느냐?”
               “ 음광불(飮光佛:가섭)이 석가의 한 발 여섯 자되는 가사를 손
            에 들고 계족산에서 미륵의 하생을 기다리다가 한 발 여섯 자되

            는 가사를 천 자나 되는 미륵의 몸에 걸쳐 주어도 매우 잘 맞는
            다고 하였습니다.석가의 키는 한 발 여섯 자,미륵은 천 자인데

            그렇다면 미륵의 키를 짧게 하는 법을 알았던 것입니까,짧은 가
            사를 길게 하는 법을 알았던 것입니까?”
               “ 그대가 더 잘 알 것이다.”

               이때 영명스님이 소맷자락을 떨치며 나가 버리자 이렇게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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