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선림고경총서 - 10 - 오가정종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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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오가정종찬 하

               “스님께 짚신을 드리고 지팡이를 드리는 것이 제 분수 밖의 일

            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 동행이 있지 않느냐?”

               “ 그 한 사람은 가르침을 받지 않습니다.”
               투자스님은 말을 그만두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스님에게 말
            하였다.
               “아침에 했던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다.”

               “ 다시 말씀해 보십시오.”
               “ 묘시(卯時)에 해가 돋고 술시(戌時)에 달이 뜬다.”

               스님이 등불을 켜 들고 오자 투자스님이 말하였다.
               “여기 올라오고 내려가고 할 때 한 번도 빈손인 적이 없구나!”
               “ 제가 가까이서 모실 때는 이렇게 해야 도리에 맞다 하겠습니

            다.”
               “ 누구 집에는 노비나 계집종이 없다더냐?”

               “ 스님께서는 연로하시니 시중들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 정성이 지극하구나.”
               “ 은혜에 보답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대낮에 기타림(衹陀林)에 들어가니 밝은 달이 중천에 떠 있고,

            한밤에 영취산에 올라가니 태양이 눈부시다.까마귀는 흰 눈과 같
            고 외로운 기러기는 떼를 이루었는데,무쇠개는 짖어대며 하늘을
            날고 진흙소는 싸우며 바다로 뛰어든다.

               바로 이러한 때 시방의 사람이 모두 함께 모였으니 너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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