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선림고경총서 - 10 - 오가정종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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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오가정종찬 하

               상당하여 말하였다.

               “깎아지른 산봉우리를 올라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똑바로 돌아
            보지도 않고 이렇게 걸어왔으나 아직도 이것은 세인의 발길이 닿

            았던 곳이다.만일 투철하게 깨치면 문 밖을 나서지 않아도 몸은
            시방세계에 두루 노닐고 문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항상 집안에
            안주하리라.혹시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시원할 때를 틈타 땔감이
            나 져오는 게 좋겠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오묘한 뜻을 캐면 근본을 잃고 깊은 도를 체득하면 종문을 잃
            어버리니 한마디에 흐름을 끊어야 보이지 않는 연원까지 마르게
            된다.그러기에 금바늘은 은밀한 곳에서는 바늘 끝이 보이지 않다

            가 옥실을 꿰었을 때야 보이지 않게 이채를 띠게 되는 것이다.그
            렇다 하나 그것은 아직 둘이 서로 밝혀 주는 것이다.자!말해 보

            아라.좋은 솜씨니 못난 솜씨니 하는 것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어
            떻게 하면 몸을 맡길 수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
               “구름과 칡덩굴 빼어난 곳에 푸른 그늘 드리워지고

               높고 낮은 바위와 나무는 비취색 관문을 깊숙이 닫았구나.”
               [雲蘿秀處靑陰合 巖樹高低翠鎖深]



               상당하여 말하였다.
               “허깨비 빈 몸이 그대로 법신이다.”

               그리고는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말하였다.“보이느냐,보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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