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9 - 선림고경총서 - 12 - 임제록.법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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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문십규론 239
그런 뒤에야 종지를 높이 제창하고 진실한 가풍을 널리 폈는
데 옛 논의를 인용하여 따져 묻고 아직 깨닫지 못한 공안을 지
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도태를 거치지 않고 고금을 억측으로 단정한
다면 검술을 배우지 않고 억지로 태아(太阿)의 보검으로 칼춤을
추며,물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망령되게 깊은 물을 건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손을 다치고 발이 빠지는 근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잘 선택하는 자라면 물에서 우유만을 가려내는 거위 왕과 같
으며,잘 선택하지 못하는 자는 신령한 거북이가 발자국을 교정
(矯正)하는 격이다.*하물며 그 사이에 맞고 안 맞는 경계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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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말이 있는 경우겠느냐.삶에서 나왔는가 하면 되려 사지(死
地)로 나아가고,정도(正道)를 가지고 도리어 편문(偏門)에 붙이
기도 한다.
미친 마음을 부려 그 마음으로 성인의 뜻을 헤아리게 해서는
안 된다.하물며 만 가지로 교화를 펴는 방편을 갖춘 일자법문
(一字法門)의 요점에 있어서랴.이 점을 조심하지 않고 찾아오는
자들을 상대해서야 되겠는가.
*거북이가 알을 낳아 모래 속에 숨기고,알이 있는 곳을 감추기 위해 자기가
살던 곳으로 피해 도망가면서 꼬리를 끌어 자기의 발자국을 지우려고 하나
오히려 흔적이 더 크게 남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