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8 - 선림고경총서 - 13 - 위앙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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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위앙록
‘생각[想]이 나면 모습[相]이 납니다.그러나 저는 벌써 담박
(淡泊)해졌습니다마는,지금이야말로 번뇌의 흐름 속에 처해 있
습니다.’
‘ 그렇다면 그대의 지혜 눈[智眼]은 아직 흐리다.법안(法眼)의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내 뜬 거품 속 일을 알겠는가?’
‘ 태화(太和)3년(829)에 스님의 분부를 받들고 진리를 참구하
여 실상의 성품과 실제의 묘리를 몽땅 구명하여 찰나간에 자기
성품의 맑고 흐림을 가려냈고,이론과 행의 갈피가 분명해졌습
니다.이로부터는 이어받을 종지(宗旨)는 비록 행과 이치이지만
힘과 작용은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스님께서
는 이러한 경지를 얻으셨습니까?얻지 못했다면 해인삼매(海印
三昧)로써 맞추어 보시면 앞에 배운 이와 뒤에 배울 이가 딴 길
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그대의 안목(眼目)이 이미 그러하니,인연 따라 아무 곳에서
나 수행하면 가는 곳 그대로가 출가한 것과 똑같으리라.’
‘ 제가 처음 스님께 절하고 하직할 때,화상께서 지시해 주신
말씀이 있지 않았습니까?’
‘ 있었다.’
‘ 그것이 비록 이치[機理]이기는 하나 현실[事]에 부합됨이 없
지 않은 말씀이었습니다.’
‘ 그대는 정말 진[秦]나라 때 쓰던 탁락찬(鐸落鑽:성 쌓던 기
구,쓸모 없는 물건을 말함)이로다.’
‘ 자만할 일은 아닙니다.’
‘ 그대 마음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