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선림고경총서 - 13 - 위앙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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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위앙록


               “그대는 어떤가?”
               “ 저는 그저 피곤하면 잠을 자고,기운 있으면 좌선을 합니다.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 그 정도 되기가 어렵지.”
               “ 제 생각은 그럴 뿐이니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 그대 혼자로는 말할 수 없지.”
               “ 예로부터 모든 성인이 다 그렇습니다.”

               “ 많은 사람이 그대의 이 같은 대꾸를 비웃을 것이다.”
               “ 비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그와 동참하겠습니다.”
               “ 생사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어떠한가?”

               앙산스님이 선상(禪床)을 한 바퀴 돌자 스님은 “고금을 깨부
            숴 버렸군”하셨다.



                 장산 근(蔣山懃)스님은 말하였다.
                 “거문고를 튕겨 이별을 노래하고,낙엽이 지니 가을인 줄 알겠
               더라.예나 지금이나 척척 들어맞는다.
                 조도(鳥道)와 현로(玄路)*는 이들 스승과 제자가 직접 다녔다
                                       1)
               할 만하겠지만 만약 가시덤불 속에 있다면 아직 깨닫지 못했다
               하리라.그 증거로서 앙산이 선상을 한 바퀴 돌자 위산이 ‘고금
               을 깨부숴 버렸군’이라 말한 것을 들 수 있다.눈 밝은 납승(衲
               僧)이었다면 조금도 속이지 못했을 것이다.”


            *동산 양개스님은 ‘3로(三路)’의 법식으로 학인들을 지도했다.① 조도(鳥道):
              새가 창공을 날 때 자국이 없는 것처럼 종적이나 소식을 끊은 경계.② 현로
              (玄路):유무(有無)․미오(迷悟)등 모든 견해가 공적해진 곳에서 왕래하는 경
              계.③ 전수(展手):향상일로(向上一路)에서 더 나아가 중생을 제도하는 경계.
              ①②는 자수용문(自受用門),③은 지수용문(地受用門)에 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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