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선림고경총서 - 13 - 위앙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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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위앙록
향엄스님은 이 질문을 받고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방으로
되돌아와 평소에 보았던 모든 책을 뒤져 가며 적절한 대답을 찾
으려고 애를 써 보았으나 끝내는 찾지 못하였다.그래서 그는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워 주지 못한다.”
그런 뒤로 향엄스님은 여러 번 스님께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
였으나 그럴 때마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에게 말해 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를 욕할 것이네.
무엇이든 내가 설명하는 것은 내 일일 뿐 결코 그대의 수행과는
관계가 없느니라.”
향엄스님은 이윽고 평소에 보았던 책들을 태워 버리면서 말
하였다.
“금생에서는 더 이상 불법을 배우지 않고 이제부터는 그저
멀리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는 밥중노릇이나 하면서 이 몸뚱이
나 좀 편하게 지내리라.”
이리하여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하직하였다.곧바로 남양(南
陽)지방을 지나다가 혜충국사(慧忠國師)의 탑을 참배하고는 마
침내 그곳에서 쉬게 되었다.
하루는 잡초와 나무를 베다가 우연히 기왓장 한 조각을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딱’부딪치는 소리를 듣고는 단박에
깨닫게 되었다.
향엄스님은 급히 거처로 돌아와 목욕 분향하고 멀리 계시는
스님(위산)께 절을 올리고는 말하였다.
“스님의 큰 자비여!부모의 은혜보다 더 크십니다.만일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