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선림고경총서 - 15 - 운문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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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中 175


               “백추를 잡거나 불자를 세우거나 손가락을 퉁기거나 눈썹을 드
            날리거나 한 번 묻고 한 번 대답하는 것이 모조리 종승(宗乘)의 본

            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종승의 본분인지요?”

               “ 지하 염부제까지도 여러분들은 모두 말할 수 있다.시끄러운
            시장 안에 앉아 있는 아침나절에,돼지고기 파는 탁자와 썩은 거

            름 구덩이 속의 벌레에도 불조를 뛰어넘는 이치가 있더냐?”
               “ 어떤 사람은 긍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 긍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그러나 흥정할 땐 있다가도 흥정

            하지 않을 땐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그렇게 말하는 입장은 본체
            [體]의 입장에서 현상[事]을 이해한 것이니,직언(直言)이 이르지

            못하는 곳엔 견해가 편벽될 뿐이다.”
               127.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나는 평소에 ‘온갖 소리가 부처님의 소리이며,모든 색이 부처
            님의 색이다’고 하였다.온 누리 그대로가 법신인데도 부질없이

            부처니 법이니 중도니 하는 견해를 지었으나 지금에는 주장자를
            보면 주장자라 하고 집을 보면 집이라 할 뿐이다.”

               128.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해도 한다[作]할 것이 없고 써도 쓴다[用]할 것이 없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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