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선림고경총서 - 17 - 양기록.황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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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양기록․황룡록


            스님에게 당하고 곧장 입이 납작하게 되는 낭패를 면치 못하였다.’
               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날 성인이 질문했던 것은 납자를 시험하려 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그에게 저것을 물었는데 저것을 가져와 보라고 하면 그것
            은 색과 소리에 끄달리는 것으로서 그의 말이나 씹으면서 그의 올

            가미에 올라앉은 셈이다.약산스님은 그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아
            셨기 때문에 그만둔 것이다.’

               또 말할 것이다.
               ‘약산스님이 그렇게 했던 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일으킨 것이
            니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한편 준스님은 병통인 줄 모르고

            서 도리어 부스럼 위에다가 쑥불을 놓았다 하리라.’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옛사람들이 깨달으면 적당한 장소에서 즉흥적으로 그때에 맞
            는 설을 낼 수 있으니 가타부타가 없고 무슨 높고 낮음도 있으랴.
            피차가 서로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인 것을.다만 후세에 이르러 억

            지로 분별을 내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식의 이해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여 한 번 근원을 잃고

            미혹하여 회복하질 못한 것이다.그러므로 성실한 마음만 믿고 헤
            아리고 비교함으로써 종승에 부딪쳐 보았으나 조작과 사유가 마음

            이 있음을 따라 일어난 것임을 잘 몰랐던 것이다.이렇게 사유로
            써 부처님의 경계를 분별함은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격이어서 미진겁을 지난다 해도 끝내 되지 않을 것이다.그러므로

            행각하는 고상한 납자라면 스스로 간절히 살펴보아야만 한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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