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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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현사록
고 마음 작용이 없는 곳이다.그러므로 당장 석가가 마갈타국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유마거사가 비야리성에서 입을 다물며,수보
리가 무(無)를 연설하여 도를 나타내자 제석범천이 청법을 끊고 꽃
비를 내린다.이러한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면 어떤 일도 의심하지
않으니 깃들여 머무를 곳이 없고 과거․미래․현재를 떠났고 한
계 지울 수 없어 마음으로 헤아릴 길이 끊겼다.장엄을 의지하지
않고도 본래 진실하고 고요하며 움직이고 말하고 웃음에 어디든
명료하여 아무 부족함이 없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런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망령되이 스스로
사물과 경계에 끄달려 곳곳에서 물들고 무엇에든 얽매인다.설사
깨달았다 해도 티끌 경계가 어지럽고 명칭과 모습이 실답지 못하
다.그리하여 마음을 모아 사념을 거둬들이고 사물을 거두어 공으
로 귀결시키려 한다.눈을 꽉 감고 있다가 결국 사념이 일어났다
하면 재빨리 깨뜨려 없애고 미세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막아 눌
러 버린다.이러한 견해는 아무것도 없는 데 떨어진 외도이며 혼
백이 흩어지지 않은 죽은 사람이다.아득하고 막막하여 느낌도 인
식도 없이 자기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는 격으로 부질없이 스스로
를 속일 뿐이다.
여기에서 분별해 보면 그렇지 않으니 외진 구석 문에 기댄 것
이 아니라 구절마다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헤아릴 수도 없고
문자와도 상관없다.본래 티끌경계가 끊겼으며 본래 지위와 차례
가 없다.임시 방편으로 출가한 사람이라 이름하나 결국에는 자취
가 없다.진여․범부․성인․지옥․인간․천상이 그대를 치료하
는 처방일 뿐이다.허공도 변함이 없는데 큰 도에 어찌 떴다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