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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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태고록
이 땅이 언제나 봄인 줄을 모르네.
중암(中菴)---수윤(壽允)
일본의 윤(允)스님이 자기 호에 대해 게송을 청하였다.내 나
이 76세로 눈이 어두워 붓을 놓은 지 오래되었으나,하도 간절
하게 청하기에 굳이 노필(老筆)을 들었다.
천 겹의 푸른 산 속
만 발의 푸른 절벽 옆에
굽이치는 시내와 흐르는 샘물은 나직이 목 메이고
깊은 수풀과 뒤섞인 나무들은 허허로이 우거졌는데
그 가운데 조그만 암자 없는 듯 있어
아침저녁으로 임금을 축원하는 향연기만 보이네.
꽃은 지고 또 피지만 새는 오지 않고
흰구름만 때때로 문 앞을 찾네
뉘라서 그 절 주인의 생활을 아는가
오랫동안 세상 인연 꿈도 안 꾸네
적멸(寂滅)한 경계에서 적멸을 짝했나니
푸른 담쟁이와 소나무에는 맑은 바람과 맑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