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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장 213


            때 스님의 나이는 38세였다.
               기묘년(1339)봄에 부모를 하직하고 소요산(逍遙山)백운암(白雲

            菴)으로 가시어,한가하고 자유로이 자연의 이치를 즐기면서 백운
            가(白雲歌)한 편을 지으셨다.
               무극(無極)이라고 하는 당나라 스님이 있었다.항해(杭海)에서

            왔는데,뛰어난 재주와 능숙한 논변으로 많은 선지식들을 다 간파
            한 사람이었다.하루는 마침 스승과 이야기하다가 숙연히 마음으
            로 탄복하고 말하였다.

               “내가 본 바는 이것뿐입니다.어찌 다른 뜻에서이겠습니까.남
            조(南朝)는 임제(臨濟)의 정통 종맥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거
            기 가서 인가를 받으십시오.아무아무는 창도사(唱道師)라 하고,

            아무아무는 본분의 작가(作家)라 하여 아무 산에 있으면서 사람을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그 작가란 이른바 임제의 직계요,설암(雪

            巖)의 적손(嫡孫)으로서 석옥 청공(石屋淸珙)등 몇 사람입니다.”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다음해 지정 원년(1341)신사에
            남방으로 가려 하셨다.

               그때 채후 하충(蔡侯河冲)과 김후 문귀(金侯文貴)가 스님의 풍
            도(風度)를 사모하여,삼각산(三角山)중흥사(重興寺)로 모시니 학

            인들이 구름처럼 모였다.그러나 절은 거의 쓰러져 가고 있었다.
            스님은 대중을 거느리고 위의 두 사람과 의논하여 풍부한 재목으
            로 절을 장엄하니,앞에는 시내가 흐르고 뒤에는 산이 솟아 울창

            한 총림을 이루었다.땅을 더 개간하고 황폐한 것을 모두 다 일으
            키니,이른바 스님을 ‘중신조(重新祖)’라 한 것은 이 때문이리라.
               거기서 조금 동쪽으로 소나무 언덕에 터를 잡아 암자를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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