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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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록 上 99
병술년 봄에 고국을 떠나 이곳 대도(大都)에 이르자,먼 길의
고생도 꺼리지 않고 자취를 찾아오다가,정해년 7월에 나의 돌
많은 산 암자에 이르러서는 고요히 서로를 잊은 듯 반 달 동안
도를 이야기하였다.그의 행동을 보면 침착하고 조용하며,말을
들으면 분명하고 진실하였다.
이별할 때가 되어서 전에 지었던 ‘태고가’를 내보였는데,나
는 그것을 밝은 창 앞에서 펴 보고는 늙은 눈이 한층 밝아졌
다.그 노래를 읊어 보면 순박하고 무거우며,그 글귀를 음미해
보면 한가하고 맑았다.이는 참으로 공겁(空劫)이전의 소식을
얻은 것으로서 날카롭기만 하고 의미 없는 미사여구를 늘어놓
는 요즘의 글에 비할 것이 아니었으니 ‘태고’라는 이름이 틀리
지 않았다.나는 오랫동안 화답하는 일을 끊고 지내 왔는데 붓
이 갑자기 날뛰어 모르는 결에 종이 끝에 쓰고 아울러 노래를
짓는다.
먼저 이 암자가 있은 뒤에
비로소 세계가 있었으니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이 암자는 무너지지 않으리.
암자 안의 주인이야
있고 없고 관계없이
달은 먼 허공을 비추고
바람은 온갖 소리를 내네.
지정(至正)7년(1347)정해 8월 1일,호주(湖州)하무산(霞霧山)에
사는 석옥 노납(石屋老衲)은 76세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