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P. 44
44 나옹록
벽(黃檗)은 혀를 내둘렀었다.그러나 일찍이 장로 수좌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진실로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그릴 수도 없
으며,칭찬할 수도 없고 비방할 수도 없는 것이다.다만 저 허공
처럼 텅 비어 부처나 조사도 볼 수 없고 범부나 성인도 볼 수 없
으며,남과 죽음도 볼 수 없고 너나 나도 볼 수 없다.그 지경[分
際:테두리,범위]에 이르게 되어도 그 지경이라는 테두리도 없고,
또 허공의 모양도 없으며 갖가지 이름도 없다.그러므로 형상도
이름도 떠났기에 사람이 받을 수 없나니,취모검(吹毛劍)을 다 썼
으면 빨리 갈아 두라고 한 것이다.그러나 취모검은 쓰고 싶으면
곧 쓸 수 있는데 다시 갈아 두어서 무엇 하겠는가.만일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있으면 노승의 목숨이 그대 손에 있을 것이요,그대
가 그것을 쓸 수 없으면 그대 목숨이 내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할을 한 번 하였다.
스님은 천암스님을 하직하고 떠나 송강(松江)에 이르러 요당(了
堂)스님과 박암(泊菴)스님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감히 스님을 붙
잡아 두지 못하였다.
그 해 3월에 대도 법원사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드디어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백양(百陽)에서 차 마시고 정안(正安)*에서 과자 먹으니
10)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정안(正安):지공스님의 방장실.【원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