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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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인천보감


            (古田)에서 태어났다.부산 법원(浮山法遠:991~1067)선사에게서
            종지를 얻고 뒤에 정인사 회련(懷璉)선사를 찾아가니 회련선사가

            수좌로 삼았다가 오(吳)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선사에게 법석을
            잇게 하였다.
               신종(神宗)황제가 한번은 경수궁(慶壽宮)에 초청하여 높은 법좌

            를 마련하고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문답하게 하였는데 좌우상하
            모두가 이제껏 듣지 못했던 법문을 들었다.
               도진선사는 사람됨이 순박하고 도타우며 마음이 깊은 데다 겸

            손하여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같았지만 일단 논변을 했다 하
            면 종횡무진으로 막히는 곳이 없었다.또한 몸가짐이 매우 검소해
            서 바지 한 벌을 12년이나 입었다.태사(太史)황정견(黃庭堅)은

            선사의 진영(眞影)에 제(題)를 붙였다.



                  늙은 호랑이는 이빨이 없고 잠든 용은 울부짖지 않으니
                  수풀에 달빛 어둡고 천지에 구름 음산하도다
                  먼 산으로 눈썹 그리니 살구꽃 같은 뺨이여
                  봄바람에 실려 시집갈 때에 중매장이 필요 없었네
                  늙은 할머니 그 옛날 열다섯 젊은 시절에

                  이쪽은 칠하고 저쪽은 지우고 화장할 줄 알고 왔다오.
                  老虎無齒 臥龍不吟
                  千林月黑 六合雲陰
                  遠山作眉紅杏顋

                  嫁與春風不用媒
                  老婆三五少年日
                  也解東塗西抹來  은산집(隱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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