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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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룡(驪龍)은 밝은 구슬을 아끼지 않는데도
                  지금 사람들 그것을 구할 줄 모른다네.
                  何事朝愁與暮愁 少年不學老還羞
                  明珠不是驪龍惜 自是時人不解求



               한번은 악주(卾州)황룡산(黃龍山)을 지나가다가 자줏빛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도인이 살지나 않을까 하여 산에 들어가 보

            니,마침 기(機)선사가 상당법문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선사는 이상한 사람이 자리에 몰래 들어온 것을 알고는 큰소
            리로 꾸짖었다.

               “대중 속에 법을 훔치려는 자가 있구나!”
               그러자 여동빈이 썩 나서서 물었다.
               “좁쌀 한 알 속에 세계를 갈무리하고,반 되 짜리 솥 안에 산

            천을 삶으니,이 무슨 도리인지 한번 말해 보시오.”선사가 “시체
            나 지키는 귀신이로구나”하니,여동빈은 “주머니 속에 장생불사

            하는 약이 있다면 어쩌겠소?”하였다.선사가 “설령 8만 겁을 산
            다 해도 결국에는 허무 속에 떨어질 것이다”하니 여동빈은 분한
            기색도 없이 떠났는데,밤이 되자 칼을 날려 선사를 위협하였다.

            선사는 미리 알고 법의로 머리를 감싸고 방장실에 앉아 있었다.
            칼이 들어와 몇 바퀴 돌다가 선사가 손으로 가리키자 바닥에 떨

            어지고 말았다.이에 여동빈이 사죄하자 선사가 꼬투리를 잡아 따
            져 물었다.
               “반 되 짜리 솥 안은 묻지 않겠지만,어떤 것이 좁쌀 한 알에

            세계를 갈무리하는 일인가?”여동빈은 이 말끝에 느낀 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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