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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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는데 거사는 여기서 깨달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 노남(瀘南)의 태수(太守)가 되었을 때,한번은 좌선을 하
다가 글을 지었는데 거기에 “공무를 보는 여가에 즐겨 좌선을 하
며 옆구리를 침상에 대고 자는 일이 적었다”는 구절이 있었다.그
리고는 청정한 공부에 더욱 뜻을 두어 가는 곳마다 수준 높은 참
선회를 만들어 승속을 일깨웠다.또한 전란이 일어나 경전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자,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받는 봉급을 오로지
경을 사는 데 보시하였다.그때 그가 지은 게송이 있다.
나는 별난 성미 타고나서
재물은 있는 대로 허공에 저축하네
자손을 위한 계책은 세우지 않고
수레나 말을 타고 거드름피우지 않으며
노리개를 사는 데 충당하지도 않고
성색을 즐기는 일에 쓰지도 않는다
송곳 꽂을 땅도 없고
한 조각 기왓장 올릴 집도 없으며
달마다 받는 봉급은
오직 경전 사는 데 보시하노니
경을 펼쳐 보는 이는
하나도 남김없이 깨달아 들기 바라네
옛날 부처님은 게송 반 마디를 듣기 위해
야차(夜叉)에게까지도 온몸을 버렸으니
그러므로 나도 재물을 아끼지 않고
미혹한 이들에게 열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