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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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음률로 시 짓기를 좋아하여 담담하면서도 맑은 경지에 이르렀
는데 소동파(蘇東坡)는 스님을 ‘시로(詩老)’라고 불렀다.소동파가
정월 대보름에 관료들과 함께 관등놀이를 갔다.그는 혼자 스님을
찾아뵈었는데 스님이 조용히 앉아 좌선을 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
는 절구(絶句)한 수를 지었다.
문 앞엔 노랫소리 북소리 왁자지껄한데
말쑥한 방 하나,얼음같이 차구나
부질없이 유리로 사물을 비쳐 보지 않고서야
무진한 그것이 본래 등이 아님을 비로소 알았네.
門前歌鼓鬧紛崩 一室蕭然冷欲氷
不把琉璃閑照物 始知無盡本非燈
스님은 매우 엄격하게 몸을 다스려 눕지 않고 지내며 하루 한
끼 먹고 행주좌와 어느 때고 법복을 벗은 일이 없었다.스스로 근
검절약하여 평생 누더기 한 벌을 바꾸지 않았으며,혹 양식이 떨
어지면 벽곡(辟穀:곡물을 먹지 않고 솔잎이나 야채를 먹음)을 하며
좌선할 뿐이었다.
만년에는 서호(西湖)가에 살았는데 말끔한 선상(禪床)하나뿐
쓸데없는 물건은 남겨 두지 않았다.창밖에는 오직 붉은 파초 몇
대공과 푸른 대나무 몇백 줄기뿐이었는데 그곳을 스스로 ‘소소당
(蕭蕭堂)’이라 이름 짓고 살았다.임종하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죽
고 나면 파초와 대나무도 죽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뒤에 그 말대
로 되었다. 이운집(怡雲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