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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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대지율사(大智律師)의 행적



               영지사(靈芝寺)원조(元照:1048~1116)율사는 전당(錢塘)사람
            이다.어려서부터 숙세의 인연이 익어져 나이 열여덟에 경에 통달
            하여 출가하였으며,사미로 있을 때 이미 대중을 위해 경을 강의

            하였다.계율을 배우면서는 배울 만한 스승이 없다고 늘 탄식하였
            다.당시 신오 처겸(神悟處謙)법사는 천태의 도를 깊이 터득하고

            있었다.율사가 찾아뵙고는 “참으로 나의 스승이시다”하고 청을
            해서 문하에 있게 되었다.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춥거나 덥
            거나 날마다 몇 리 길을 걸어와 배웠다.처겸법사는 강론을 할 때

            마다 반드시 율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어쩌다 조금 늦어져 대
            중들이 시간이 지났다고 강론을 청하면 언제나 “강을 들을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으니 그는 이토록 율사를 사랑하였다.
               율사가 익혀 왔던 것을 버리고 법사를 따르려 하니 법사가 말
            하였다.
               “요즘 들어서 율의 가르침이 점점 약해지는데 그대는 뒷날 반

            드시 종장이 될 것이니 꼭 법화(法華)를 밝히고 사분율(四分律)을
            널리 펴도록 하여라.나의 도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율사는 마침내 많은 종파를 널리 연구하고 그 중에 율을 근본
            삼았는데 단지 말로만 하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일찍이 남산 도선(南山道宣)율사에게 귀의하여 하루 여섯 차례

            씩 예배를 드리고 밤낮으로 도를 닦았다.발우를 들고 걸식을 다
            녔는데 옷이라고는 큰 베옷 하나만 걸쳤을 뿐이었고,정오가 지나

            서는 밥을 먹지 않았다.발우 하나와 옷 세 벌뿐 바랑 속에 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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