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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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 이 마음법[心法]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을 묘삼천(妙三千)이라
            합니다.”

               얼마 있다가 법진스님이 동액(東掖:궁궐 안에 있는 절)으로 거처
            를 옮기며 주지를 사임하게 되자,법사에게 명하여 뒤를 잇게 하
            니 법사가 말하였다.

               “옛날 지자(智者)대사는 나이 50이 되기 전에 문도대중을 흩어
            버렸고,사명(四明)대사는 40이 되자 장좌불와했었습니다.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늙어서 한가하게 주지를 맡겠습니

            까.”
               그리하여 끝내 받지 않고 영취산 동쪽 봉우리에 은거하였는데,
            그곳에 아기위나무가 한 그루 있어 그 옆에 암자를 짓고 ‘사암(樝

            庵)’이라 이름하였다.암자의 기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내 나이 60에 산에 돌아와 암자터를 잡았다.암자가 다 되
                어 그 속에서 요양이나 하고 지내면서,그렇다고 세상살이를
                지나치게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다.암자 서쪽에 아가위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 이름을 따서 암자 이름을 지었는데,아가
                위란 맛이 좋다고 이름난 과실도 아니고 배나 밤에 비하면 부

                끄럽게 생겼다.그러나 배는 그 시원한 맛 때문에 칼에 베어
                지고 밤은 그 단맛 때문에 입에 씹히게 되니,설혹 배와 밤에
                게 식성(識性)을 부여해서 그들 스스로 쓸모 없는 곳에 있게
                해달라고 해도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 아가위는 돌배의 종류에 속하는 것이어서 비록
                향기는 있어도 맛이 떫다.억지로 씹으려 해도 향기로는 배를
                채울 수 없고 떫은 맛은 입을 상쾌하게 할 수 없으니,삼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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