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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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인천보감


            드물고,출세간 수행의 극치인 12두타(十二頭陀)는 우리 스님네들
            도 하기 어려운 수행이다.법을 위해 분연히 몸을 돌아보지 않는

            일도 역시 사람으로서 하기 어려운 일인데,선사는 이 모든 것을
            체득해서 행하니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영당기(影堂記)




               85.선문에서 정토수행도 아울러 하다/
                   원조 종본(圓照宗本)선사



               원조 종본(圓照宗本:1022~1099)선사는 상주(常州)사람인데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여 겉치레를 일삼지 않았다.천의 의회(天衣

            義懷:936~1064,운문종)선사에게 귀의하여 헤진 옷에 때묻은 얼
            굴을 하고,물긷고 방아찧고 밥짓는 일을 맡아보았다.낮에는 스
            님네들의 뒷바라지에 쫓아다니고 밤이면 새벽까지 좌선하며 고생

            을 무릅쓰고 정진하였는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어떤 사람
            이 말하기를 “수행하면서 대중의 일도 맡고 있으니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하니 선사는 “한 법이라도 버리면 원만한 공부라 할 수
            없다.결단코 이 생에서 이 몸으로 깨치려는데 감히 고단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하였다.

               서광사(瑞光寺)에 주지 자리가 비어서 선사에게 주지하도록 명
            하였다.그곳에 이르러 북을 치니 대중이 모였는데 갑자기 북이
            땅에 떨어져 떼굴떼굴 구르면서 크게 울렸다.한 스님이 선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것은 화상의 우레 같은 법음이 땅을 진동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어느덧 그는 온데간데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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