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5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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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한가한 곳을 찾아다녔을 뿐이다.그 후에도 비록 주지란
제도가 있었으나 왕처럼 존경을 받아 인간과 하늘의 스승이 되었
다.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이름을 관가에 걸어 놓고 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오라 가라 하니 이 어찌 다시 할 짓이겠는가.”
팽기자가 그대로 전하자 사사직은 다시 편지를 보내 “한번 만
나 보고자 할 뿐 감히 주지 일로 서로를 궁색하게 하려는 것은 아
닙니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사방의 공경대부와 사귀는 데 있어서 뜻이 맞으면 천
리라도 가지만 뜻이 맞지 않으면 수십 리밖에 안 되는 곳도 가지
않았다.선사는 불전(佛典)뿐 아니라 다른 책들을 가지고도 자세히
따져 가면서 법문하여,저마다 공부해 온 것을 바탕으로 욕심을
극복하고 스스로 보게 하였다.그리하여 깨닫게 되면 같은 길로
돌아오게 하고,돌아오면 가르칠 것이 없었다.이 일로 제방에서
는 다른 책과 불전을 뒤섞어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니 선사가 말
하였다.
“견성을 못 하면 불조의 비밀한 말씀도 모조리 바깥 책이 되
고,견성을 하면 마구니 설이나 여우 선[狐禪]도 불조의 비밀한 말
씀이 된다.”
이런 까닭에 40년 동안 그의 도풍을 듣고 깨달은 사대부가 많
다.황정견(黃庭堅:1045~1105)은 오래 전부터 수기를 받은 일로
큰 법을 맡아볼 만한 사람이었으나 안목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그는 선사의 탑을 찾아와 보고서는 크게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깊
은 탄식을 하였다.그리고는 마침내 단단한 옥돌에 글을 새겨 선
사가 남기신 아름다운 자취를 공경히 송하였다. 탑명(塔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