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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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받들어 국사로 모셨다.
당시 회창(會昌)의 법난(845)때문에 천태 지자(天台智者)대사의
교법이,큰스님들은 빛을 감추고 저술들도 대부분 해동(海東:고
려)으로 흘러갔었다.나계 의적(螺溪義寂:919~987,천태종 중흥조)
법사가 앞으로 불법을 들을 수 없게 됨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힘써 모아 보았으나 우선 금화사(金華寺)장경각에서 유마경의소
(維摩經義疏) 한 질을 찾았을 뿐이었다.그 뒤 충의왕이 불경을
읽다가 내용[敎相]에 막혀 스님께 법문을 청하였다.스님께서는
의적을 천태종의 종지에 훤히 통한 사람이라 칭찬하니 왕이 마침
내 의적스님을 불러 강원을 세웠다.왕이 기뻐하여 특별히 열 사
람의 사신을 바다 건너 파견하여 경전을 베껴 돌아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불법이 다시 일어나 지금까지 땅에 떨어지지 않으니,그
것은 덕소스님과 의적스님의 덕택이라 하겠다.
개보(開寶)4년(972)6월 28일 천태산(天台山)화정봉(華頂峯)에
서 입적하셨는데,이날 밤 별이 땅에 떨어지고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스님께서 열반하실 때 보인 신비한 징조는 이루 다 기록
할 수 없으며,법등(法燈:?~974)선사의 행업(行業) 등 글에 자
세하게 실려 있다.
6.소금 한 줌/지자 지의(智者智顗)선사
지자 지의(智者智顗:538~579,천태종의 개조)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