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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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할 수 없음을 알았다.마침내 자운(慈雲)법사에게 편지를 내어
항주(杭州)에서 명주(明州)로 오게 하여,법사가 직접 그들의 결의
를 막아 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고을의 장수에게는 그들을 보호
하여 분신할 틈을 주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이 해에 양공은 스님에게 법호를 내려 줄 것을 조정에 청하였
다.진종(眞宗)황제가 양공을 불러 까닭을 물으시니,공은 이 기회
에 스님께서 몸을 버리려 한다는 일을 아뢰었다.황제가 기뻐 찬
탄하면서 양공에게 “세상에 머물러 주십사 하는 내 마음을 꼭 전
하라”고 거듭 말하며,법지(法智)라는 법호를 내리셨다.이 일로
원행(願行)이 실현되지 않자,스님은 도반들과 다시 광명참법(光明
懺法)을 닦아 자연스럽게 입적하자고 약속하였다.닷새째 되던 날,
가부좌한 채 대중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났다가 죽는 것은 당연한 분수다.그대들은 쉴새없이
부지런히 도를 닦고,내가 살아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나의 가르
침을 따라야 한다.”
말이 끝나자 스님은 염불을 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교행록등(敎
行錄等)
11.소동파의 신규각 비문/대각 회련(大覺懷璉)선사
원통사(圓通寺)의 거눌(居訥:1010~1071,운문종)선사는 신주(梓
州)사람이다.성품이 단정하여 자기를 다스리는 데에 엄격하고
대중에게는 법도 있게 대하였다.밤이면 반드시 선정에 들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