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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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방장실을 짓지 않고 대중과 함께하다/수기(修己)선사
장석사(仗錫寺)수기(修己)선사는 부산 법원(浮山法遠)선사와 함
께 행각하였고,여산(廬山)불수암(佛手巖)에 암자를 짓고 살기도
하였다.뒷날에는 사명산(四明山)깊숙이 들어가 십여 년을 홀로
살았는데,범과 표범이 나타나도 삼매를 닦은 힘 때문에 한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불구불 험한 산길에 찾아오는 사람 없고
적막한 구름 속에 한 사람뿐이어라.
羊腸鳥道無人到 寂寞雲中一箇人
뒤에 승속이 모두 그의 도풍을 듣고 흠모하게 되었는데,산에
산 지 40여 년 되도록 집안에 쌓아 둔 물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
었다.겨울이나 여름이나 누더기 한 벌로 지내며 오직 절 일으킬
것만을 생각하여,여러 해에 걸쳐 힘쓴 끝에 선림을 이루게 되었
다.대중들에게 필요한 물건은 많이 갖추어 놓았으나 방장실만은
짓지 않고 대중과 함께 거처하였으니,이는 아마도 수기선사가 방
을 따로 쓰면서 편안하게 지내는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
일 것이다.
나중에 지사(知事)온궁(蘊躬)이라는 사람이 선사가 먼 곳에 출
타한 틈을 타서 방장실을 지어 놓았다.당시 달관 담영(達觀曇穎:
989~1060,임제종)선사가 설두산(雪竇山)에서 법을 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감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