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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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대할 때 마음속에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하였다.
               당시 심숙재(沈叔才)가 항주(杭州)를 다스리고 있었는데,그는

            관음도량(觀音道場)은 경 공부와 참회로 불사를 하는 곳이니 선수
            행자들이 살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스님에게 교학하던
            곳을 선도량으로 바꾸라고 명하였다.스님이 그곳에 도착하자 오

            월(吳越)사람들은 마치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기라도 한 것처럼
            귀의하고 부모를 공양하듯 스님을 모셨다.돈,베,비단 등의 보시
            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왔다.그러다가 천축사(天竺寺)에 머

            무른 지 14년 되던 해,그 절의 부(富)를 탐내는 사람이 스님을 협
            박하여 쫓아내니,스님은 기꺼이 떠나면서 그것을 마음에 품지 않
            았다.이 일로 천축사 대중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사건이 조정에

            알려져 다음 해에 스님이 다시 옛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스님
            은 마지못해 돌아오는 듯하였고,대중들은 다시 크게 모였다.스

            님과 세속을 벗어난 도반이었던 조청헌(趙淸獻:趙抃)은 이 일을
            보고 찬(讚)하였다.



                  스님께서 천축사를 떠나니 산은 비고 귀신이 울었는데
                  천축사에 스님께서 돌아오니 도량에는 빛이 찬란하도다.
                  師去天竺山空鬼哭 天竺師歸道場光輝



               스님은 그곳에 다시 2년을 머무르다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씀하
            셨다.
               “성인이었던 우리 조사 지자(智者)대사도 중생교화를 더 급하

            게 여겨 자기 수행에는 해가 되었기에 수행위로는 철륜왕(鐵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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